2011년 2월 28일 월요일

포르투갈 여행 5, 에보라 (Évora, Portugal)


에보라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잘 보전되어 있는 중세마을 중 하나다. 리스본에서 동쪽으로 130km 정도 떨어져 있어, 리스본에서는 버스를 타고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다. 인구 5만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 로마시대 신전부터 다양한 시기의 성당들이 남아 있어서 천천히 구경하면서 다니면 사실 당일치기로는 부족하지 않나 싶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마을 중심의 언덕에 있는 대성당으로 가는 길에 주요 유적지들이 다 모여 있다. 걸어서 30분이면 충분한 짧은 길이지만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많은 성당들 중 가장 흥미를 끌었던 건 The Graca Church in Évora. 르네상스 양식의 교회라는데, 위에 올라가 있는 조각상들은 기독교의 성인들도 아니고.. 도대체 누구 아이디어였을까. 인터넷을 찾아봐도 언제 만들어졌는지, 저 조각상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정확히 알기는 힘들다.



정교하지는 않지만 교회 기둥위에 편안하게 걸터 앉아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인다. 포르투갈의 거리나 성당, 궁전들은 웅장함이나 세련되고 정교한 멋은 없지만 유머감각과 흐트러진 듯 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는 멋이 살아 있는데, 이 교회도 그 중의 하나인 듯.





마을의 중심에는 로마 신전과 대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로마 신전은 기둥이 몇 개 남아 있는 정도이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로마에서 한참 떨어진 이 곳에 로마시대 유적이 200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의미가 더 클 듯 하다. 아직 기둥이 서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하지 암...

에보라 대성당은 교회라기 보다 요새처럼 보이는데, 이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과의 전쟁이 한참이던 1186년에 건설이 시작되어 60여년에 걸쳐 지어졌다니, 사정이 짐작되긴 한다.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찾아 출항하기 전 깃발이 축복 받은 곳이 이 성당이라니, 중세시대에는 포르투갈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 중 하나였음이 틀림없다. 

성당 안의 장식과 보물들도 볼 만 하지만, 유럽의 온갖 교회와 궁전들을 보고 온 여행자에게는 조금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관광객이 적다는 것은 큰 장점. 조용한 중세시대의 성당을 걸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은 곳. 아울러 교회 건축양식이 특이해 보고 있으면 역시나... 재미있다. 탑 모양이 서로 다르게 생겼는데 역시 성당보다는 요새나 궁전에 잘 어울리는 듯 하다.






규모가 꽤 큰 성당이라 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나 성당 구석구석을 살피려면 서너시간은 걸릴 듯 하다. 정원도 크진 않지만 관리가 잘 되고 있다.



요새처럼 지어진 성당이라 그런지, 성당 위에 올라가서 걸어다닐 수도 있다. 탑이나 돔 위로 올라가는 성당은 많이 봤지만 옥상 전체가 걸어다닐 수 있게 되어 있는 성당은 처음. 성당 위에서 바라보는 에보라의 모습은 강과 바다를 통해 자라난 리스본의 풍경과는 또 전혀 딴 판이다.


에보라에서 가장 유명한 성당은 뼈성당이라고 불리는 Chapel of Bones. 버스정류장에서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중간쯤 커다란 Saint Francis Church가 있는데 그 옆에 작게 붙어 있다. 이름이 말해주 듯 기도실 전체가 뼈로 장식되어 있는 성당이다. 대략 5000구 정도의 시신이라는데, 삶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근처 수도원과 교회에 있는 수도승들의 시신을 모아서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동묘지에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져서 시신을 다 꺼내서 만들었다는 설도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다. 진실이 어떻든 간에 두번 다시 보기 힘든 장면인 것은 틀림 없는데... 반드시 밥은 먼저 먹은 다음에 가서 보자. 수도승들의 명상실로 사용되었다는데, 명상을 위해 이런 극적인 디스플레이가 정말 필요했는지는 의문스럽다. 형편없는 생활수준과 짧은 평균수명, 주기적인 역병에 시달렸던 중세시대에 죽음의 이미지를 이렇게 대규모로 보여줄 필요가 있었을까?

당시의 의미는 어떻든 간에 죽음을 잊고 사는 우리들에게는 충격적인 이미지인 것은 틀림없다. 에보라의 아름다운 풍경과 뼈성당 입구에 적혀 있는 문구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듯 하다. 


We bones, lying here bare, are awaiting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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